커피그램

커피의 유래 세계인의 음료가 된 과정 간단 정리

알달세놀 2022. 10. 30. 11:48
반응형

2000년대 들어서부터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커피 한잔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커피는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검붉은 색의 시큼하고 쌉싸래한 열매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음료가 될 수 있었던 과정을 커피의 유래에 관한 3가지 기원을 를 통해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세계인의 음료 커피는 쌉싸래한 맛이 특징이다.
커피는 세계인의 음료가 되었다.

 

1. 커피의 유래 - 칼디의 전설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커피의 유래를 둘러싸고는 다양한 설이 있지만 확실한 기록이나 문헌상의 증거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칼디의 전설에 따르면 붉은 커피 열매를 먹고 흥분한 염소 떼에 의해 커피가 발견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커피의 기원과 관련한 설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윌리엄 유커스의 '커피의 모든 것'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칼디의 전설은 커피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염소를 통해 커피를 발견한 칼디

 

지금으로부터 약 2700~2800년 전, 에티오피아의 양치기 소년인 칼디는 어느 날 자신이 기르는 염소들이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았고, 그 이후 염소들의 행동을 주시했습니다. 며칠간 유심히 염소들을 관찰한 칼디는 염소들이 들판에 있는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먹고나면 흥분을 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열매의 맛과 성분이 궁금해진 자신도 열매를 먹어보았고, 곧 피로감이 사라지면서 신경이 곤두서는 듯한 황홀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커피체리 열매가 커피콩이다.
커피체리나무의 열매가 커피콩이다.

 

그는 곧장 인근의 이슬람 사원에 있는 사제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렸고, 이 빨간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한 사제들은 밤 기도를 위한 음료로 이용하여 여러 사원으로 퍼지게 되었습니다.

2. 커피의 유래 - 오마르의 발견설

처음 커피 열매는 잠을 쫓아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주는 약에 가까웠습니다. 1258년 아라비아의 이슬람 승려 '셰이크 오마르'는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이를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에게 모함을 받고 성주의 딸을 치료해주다 사랑에 빠졌다는 이유로 국왕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먼 땅인 사막을 거쳐 예맨 모카항까지 쫓겨났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오마르는 너무 배가 고팠던 나머지 새가 쪼아 먹고 있던 빨간 열매를 먹게 됩니다.

 

오마르의 발견설은 또다른 커피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
오마르가 커피를 발견했다는 이야기

 

하지만 너무 쓴맛이 강해서 이를 달여 먹었는데 놀랍게도 오마르는 몸의 피로가 사라지고 활력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추후 그는 이 열매를 이용하여 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쓰게 되었고, 이 효과는 널리 입소문이 나며 이 소문은 국왕의 귀에까지 들어가 죄를 면하게 되고 모카의 성인으로 추앙을 받게 되었습니다.

3. 커피의 유래 - 에티오피아 기원설

다른 지역에서 커피를 액체 형태로 추출하여 약으로 사용하였던 것과 달리 에티오피아 지역에서는 커피나무의 열매를 다른 곡류와 함께 분쇄하여 식량으로 취급하였습니다. 이렇게 취급된 커피콩은 점차 아라비아의 여러 지역으로 뻗어나갔고, 11세기 초 아라비아의 라제스와 아비세나를 대표로 한 의사들이 '커피가 위장의 수축을 부드럽게 하며 각성효과가 있다'라고 발표하면서부터 약이 아닌 기호음료로 변신을 꾀하게 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를 식량처럼 먹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콩을 빻아 식량처럼 먹었다고 한다.

 

4. 커피의 전파경로

많은 전문가들은 6세기쯤 아비시니아(지금의 에티오피아)가 아라비아의 남부 지방(지금의 예맨) 지역을 공격하면서 커피 또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이슬람 세력의 확장으로 인해 터키에서 많은 수도승들이 즐기는 음료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는 커피가 가진 각성효과로 인해 ㅈ밤새 기도를 하고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어야 했던 수도승들에게 몹시 유용한 음료였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그들은 커피를 마심으로써 삶의 활력을 찾고 각종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여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십자군 원정 이후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커피는 유럽인들의 삶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 이전까지 이슬람 이교도의 음료라는 이유로 종교 교리에 따라 억압되던 커피는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예술의 대상으로 여겨질 만큼 관대해지게 되었고,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으로 그 인기가 확산되기에 이릅니다. 결정적으로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에 세례를 내림으로써 이후 유럽 곳곳에 커피하우스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커피가 역사적으로 전파된 경로
이슬람에서 시작된 커피는 전세계로 전파되었다.

 

14세기경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지금의 터키)은 커피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도록 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1517년 오스만 제국의 술판 셀림 1세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 커피를 소개하고, 전문 커피 하우스를 만들어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기호 음료로서 즐기게 되었습니다. 당시 터키에서는 남편이 아내에게 하루의 커피 할당량을 준비하지 못하면 여성들이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커피 사랑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5. 커피의 한국 전파시기

한국으로의 커피는 1896년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서 고종황제가 처음 마셨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1902년 러시아 공사 웨베르의 처남의 처형인 손탁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1884년부터 한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알렌의 저서에는 '궁중에서 어의로서 시종들로부터 홍차와 커피를 대접받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선교사 아펜젤러의 선교단 보고서에는 1888년 인천에 위치한 대불 호텔을 통해 커피가 일반인들에게 판매되었음이 밝혀졌습니다.

 

고종황제가 사용했다는 커피잔
고종황제는 커피 애호가였다.

 

1884년 미국의 천문학자 로웰은 그의 저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커피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을 남겼으며,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도 커피가 중국을 통해 조선에 소개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고종이 커피를 마시기 수년 전부터 대중들도 이미 커피를 접하고 마셨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6. 커피를 판매한 한국 최초의 다방

많은 매체에서 한국 최초의 다방으로 1923년 명동의 '후타미 다방'을 꼽지만, 실제 구한말의 역사 자료에는 1913년 남대문역에서 문을 연 '남대문역 다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15년 조선 총독부 철도국에서 발행한 '조선 철도여행안내' 책자에는 '남대문역 기사텐(다방) 내부'라는 글과 함께 이곳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또한 철도 박물관 문서 자료에는 '마츠이 카이치로라는 일본인 청년이 경성의 잡화점이었던 무라타를 인수, 조선 총독부 철도국 남대문역 기사텐 및 식당차용 물품을 납입하였다'라는 기록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던 시기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다방은 남대문역 기사텐이라는 다방이었다.
한국 최초의 다방은 남대문역 다방

반응형